[리뷰] AI 시대에 피어난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정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뮤지컬/연극 / 임가을 기자 / 2026-03-06 15:01:18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모든 사람이 AI로 마법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 25년 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이 아날로그의 미학을 담아 무대 위에 등장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우연히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 치히로에게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 연극 작품으로, 동명의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022년 일본 도쿄에서 세계 초연을 올린 작품은 올해 한국에 상륙했다.

 

▲ 사진=TOHO Theatrical Dept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머릿속에서 비롯된 환상의 세계가 한 장 한 장 손으로 그려낸 그림으로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것처럼, 이번 연극 역시 수많은 인원이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여 주인공 치히로가 겪은 마법 같은 일을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전개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만큼 극 중 벌어지는 사건의 배경 대부분은 신들의 목욕탕이다. 2층 구조로 되어있는 거대한 무대 세트가 360도로 회전하며 인물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잇는 것과 함께 목욕탕의 다양한 장소를 비춘다.

치히로가 일하게 되는 목욕탕에는 일본의 800만 토속신을 나타낸 각양각색의 신이 등장한다.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울 정도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누에신’ 오시라사마, 떼로 뭉쳐 흘러가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면신’ 카스가사마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에서 태어난 개성 강한 신들이 완성도 높은 인형 탈로 구현되어 독특한 매력을 전한다. 그중에서도 핵심 이야기로 등장하는 오물신은 객석까지 무대를 확장해 환상을 경험하게 만든다.

목욕탕의 직원으로 일하는 요괴 역시 마찬가지다. 가마 할아범이 지닌 6개의 팔은 각각의 배우가 맡아 하나의 인간처럼 움직이고, 유바바의 보디가드 돌머리 삼총사는 훈도시를 입은 배우가 양손에 두 개의 머리를 들고 연기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 사진=TOHO Theatrical Dept

원작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가오나시는 극 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는 캐릭터인 만큼 무대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떨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없는 독무 시퀀스로 음침한 요괴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기괴함을 전달하고, 목욕탕 직원들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린 때에는 10명이 넘는 배우가 퍼펫을 활용해 거대한 가오나시를 구현한다.

몇몇 캐릭터는 소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마 할아범을 도와 일하는 숯검댕이부터 감초 역할을 하는 촐싹 개구리, 작아진 유버드와 쥐로 변한 보우까지 퍼펫티어들은 작은 인형들을 움직여 아기자기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앵글이 비추지 않는 곳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무대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주연 배우들이 드라마를 펼치고 있는 중 한구석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재미를 더한다.

이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수십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 연극이지만, 이들이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애니메이션 속 장면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탄생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 사진=TOHO Theatrical Dept

3시간가량 되는 러닝타임 동안 순간의 합도 어긋나서는 안 되는 동선과 움직임으로 마법을 표현하고, 군무와 노래를 소화하는 배우들은 연극의 그 어떠한 요소보다 눈에 띈다. 여기에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도 몰입감을 돕는다.

주연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유바바’ 역을 맡은 나츠키 마리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성우부터 연극판의 배우까지 함께해온 그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인 만큼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연기를 펼쳤다. 박력 있는 목욕탕의 주인부터 자신의 아이에게는 한없이 물러지는 어머니의 모습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연기한 그는 카리스마와 사랑스러움을 오가는 매력을 보여주었다.

한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오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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