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이 풀어낸 박지훈의 단종, 유해진의 엄흥도

영화/뮤지컬/연극 / 임재훈 기자 / 2026-01-30 12:40:36

[SWTV 스포츠W 임재훈 기자] "캐스팅은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투자를 받으려면 연기를 잘하면서 인기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 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나리오가 1등이 돼야 한다. 결국 캐스팅은 연출력의 정점이다"

 

▲ 장항준 감독(사진: 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배우 유해진(엄흥도 역)과 박지훈(단종 이홍위 역)을 캐스팅한 장항준 감독의 '캐스팅론'이다. 

 

장항준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개봉에 즈음한 미디어 라운드 인터뷰를 가졌다. 

 

언론배급시사회 등을 통해 영화가 공개된 이후 좋은 반응이 이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장항준 감독은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임했지만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섞인 달변으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이날 인터뷰의 주된 화두는 왜 단종 이홍위와 엄흥도의 이야기를 선택했고,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배우 박지훈과 유해진의 캐스팅을 통해 풀어냈는가 하는 것이었다.

 

장항준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 박지훈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시사회 때도 ‘박지훈이 이렇게 인기 많은지 몰랐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니 내가 몰랐다는데 왜 사람들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내가 몰랐다’는 거지, 세상이 몰랐다는 게 아니잖나. 저는 ‘프로듀스101’도 본 적이 없다. ‘흑백요리사’도 못 봤다."고 말해 다시 한 번 기자들을 웃겼다. 

 

장 감독은 "촬영 기간 내내 지훈이 볼 때마다 제가 얘기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중요한 것은) 인스타 팔로워 숫자다' (웃음) “너 또 좀 올랐더라, 더 열심히 해야 더 오르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하면 본인은 큰 관심이 없더라. “게시물이 너무 적어서 팔로우를 못 모으는 거다” 이러면 '예 예 예' 하고 안 하더라"고 전했다. .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이어 그는 이번 영화의 제작보고회와 시사회 현장에서 확인한 박지훈의 인기에 대해 "역시 팬덤이 상당했다.  커피차, 간식차도 박지훈 씨 팬분들이 끊임없이 보내주셨다. 짤 같은 것도 보게 됐는데, 박지훈 씨가 애교 부리는 짤 있잖나. 저는 그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 일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서 오히려 저는 그 모습들이 좀 낯설었다"고 밝혔다. 

 

‘약한영웅’에서 박지훈을 인상 깊게 보고 캐스팅을 결심했다는 장항준 감독은 첫 인상에 대해 "20대 젊은 사람 같지 않았다. 말수도 별로 없고, 언행도 조심스럽고, 생각을 꺼내는 것도 되게 신중하다. 제가 떠올리는 20대 남자애들 느낌은 보통 즉흥적이고 에너지가 막 솟구치고 외향적이고 그런데 (박지훈은) 좀 달라서 '괜찮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유해진 씨도 비슷했을 거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정신 사나운 건 싫다. 박지훈 씨는 좀 편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장항준 감독은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을 유배지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어리고 나약한 인간의 캐릭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 꺾이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며 자아를 찾는 입체적이고 풍성한 캐릭터로 그려냈다. 

 

이와 같은 설정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기획 단계부터 고려됐다. '단종을 나약한 이미지로만 그릴 거면 굳이 재생산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이었다. 우리가 아는 단종 이미지는 정치적 결과에 따른 이미지다. 나이가 어리고, 폐위되고, 비극적으로 죽었으니까... 그건 인물의 캐릭터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일 뿐이다. 호랑이 새끼가 버려진다고 해서 호랑이가 아닌 건 아니다. 토끼가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새로운 단종의 캐릭터를 구상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이런 구상은 역시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근거 있는 구상이었다. 

 

장 감독은 "단종은 굉장히 영특하고 똑똑하고 강단이 있어서 세종대왕이 총애했고, 문종도 아끼던 자식이었다. 또 단종은 ‘적통 중의 적통’이다. 할아버지도 왕, 아버지도 왕, 할머니도 중전, 엄마도 중전… 조선왕조에서 거의 없는 케이스다. 정통성이 당시 최고의 가치였는데, 그 기준으로도 유일에 가까운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원손-세손-세자-왕 코스를 제대로 밟은 거의 유일한 왕이라고 들었다. 그런 핏줄을 이어받았으면 강인한 인물이었을 거고, 처지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장항준 감독은 영화에서 단종이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유배길에 올라 유배지에서 좀비를 연상 시키는 몰골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엄흥도를 비롯한 유배지 마을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백성을 생각하는 군왕으로서 자아를 회복하는 변화와 성장을 담아냈다.   

 

장항준 감독은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운동을 하고 서신을 보냈을 때, 단종이 유배지에서 축 처져 있는 건 단순히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만이 아니다. 나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목이 잘리고, 핍박 당하고, 심지어 아내도 노비가 되는 걸 본 사람의 심정"이라며 "그런데 유배지에서 마을 사람들을 통해 백성과 가까이할 기회가 생기면서, '백성을 위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깨닫고 성장하게 되고, 내면 깊숙한 곳에 '좋은 왕이 돼야겠다'는 신념이 생겼을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와중에 금성대군이 '준비가 끝났으니 허락만 해달라' 했을 때, 우리가 단종 입장이면 몇 명이나 허락할 수 있을까? 저 같았으면 못 했다. 실패하면 죽는 거잖나. 모른 척하면 살 수도 있다. 근데 '잘못된 건 내가 바꿔야겠다'는, 목숨을 거는 동력은 그런 캐릭터 변화에서 온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단종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이어진 장엄한 최후를 연기한 박지훈의 연기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말이 필요 없었다.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20대가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아끼지 않았다. 

 

이어 그는 "박지훈 씨랑 리딩을 제일 많이 했다. 저는 개인 리딩을 선호하는 편이라 크랭크인 전부터 박지훈 씨가 제 방에 와서 1:1로 계속 리딩했고, 또 유지태(한명회 역) 씨 불러서 씬 해보라고 하고, '거기 너무 올라갔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다' 이런 것들도 제가 잡았다."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또 "지훈 씨가 의욕적이었어요. 제가 선생은 아니지만, 만약 선생-학생 비유를 하자면 선생들이 왜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 좋아하는지 알겠더라"며 "눈 동그랗게 뜨고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하면 바로바로 한다. 그 자세가 아주 좋은 배우였던 것 같았다."고 거듭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박지훈의 의욕적인 태도를 칭찬했다.

 

장항준 감독은 실존 인물인 엄흥도의 캐릭터를 그리는 데 있어 유해진과 함께 상당히 조심스러운 접근을 했다고 털어뇠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그는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아무리 좋은 인물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려면 복원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럼 인물은 매력적이어야 한다.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인간적인 면, 발을 땅에 대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기록 몇 줄만 보면 엄흥도는 구름 타고 다니는 신선 같은 인물이어야 한다. 근데 그런 인물로 영화 만들면 기억도 안 될 거라고 봤다. 그래서 단종이 엄흥도에게 영향을 받고 기대는 것처럼, 엄흥도도 단종을 통해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진짜 용기가 뭔지, 어른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를 배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결국 둘의 애정,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엄흥도의 캐릭터를 그린 바탕에 대해 설명했다. 

 

장항준 감독은 "실존 인물이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유해진 씨하고도 많이 했다. 다만 영화적 흐름상 코믹한 이미지도 필요했고,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야 했고, 결국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엄흥도를 연기한 배우이자 절친 유해진의 연기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이번에도 '확실히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 느꼈다"는 한 마디로 유해진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대신했다. 

 

그는 "인물과 신을 대하는 태도, 판단이 예리하고, 끝까지 진득하게 파고드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대본을 손에서 안 놨어요. 대사는 다 외웠는데도...감정신 있는 날은 말을 못 걸 정도였다. 분장 받다가도 울고, 촬영 안 하는데도 울고, 시사에서도 거의 오열하고...그만큼 몰입했다. 이 작품이 유해진 씨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왕과 사는 남자'에는 단종과 한명회는 등장하지만 또 한 명의 핵심 인물인 세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세조는 오히려 나오는 순간 몰입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을 때 악은 더 무섭다. ‘한명회 뒤에 세조가 누구여야 하냐’가 상상이 안 되고, 나오면 배우로 보이지 인물로 보이진 않을 거라고 봐서, 불필요한 인물이라 뺐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한명회를 기골이 장대한 상남자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비질란테'에서 공포감을 유발하는 괴력의 형사 캐릭터를 소화했단 배우 유지태가 그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장항준 감독은 "한명회 캐릭터를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기존 작품들에서 한명회가 삐딱하고 왜소하고 등이 굽고 이런 이미지가 많은데, 찾아보니 그건 후대 기록들이다. 한명회가 나중에 간신으로 규정되고 부관참시 당한 뒤에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라며 "당대 기록을 보면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에서 빛이 나고, 모두가 우러렀다, 무예에 능했다' 이런 기록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영의정까지 오른 재상 중의 재상이었고, 집안도 개국공신 집안이었다"고 말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자칫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고 보여지게 만드는 것이 핵심적인 연출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다. 장항준 감독은 이를 위해 일정한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장 감독은 "제가 이 작품을 안 하려고 했던 이유가 '뻔하다'였다. 그래서 '어떻게 뻔하지 않게 만들 것인가'가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했다"며 "후반부에 갈등 축이 필요했다. 황성구 작가님 시나리오 엔딩이 너무 좋았는데, 엔딩으로 가기엔 동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금성대군의 복위 운동 라인이 들어가고, 그걸 눈치 챈 한명회, 그리고 협박을 받아 단종을 관아에 고발해야 하는 엄흥도의 갈등이 후반부에 있어야 동력이 생긴다고 봤다."고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금성대군 역으로 등장한 배우 이준혁은 '특별 출연' 치고는 의미나 비중 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해낸 셈이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장항준 감독은 "사료를 보면 금성대군은 상당히 젊은 나이다. 근데 우리가 흔히 그려온 금성대군은 나이 많고 대감 같은 이미지가 많았다 저는 젊은 배우가 했으면 좋겠고, 왕족의 기품과 깨끗함이 있었으면 좋겠고, 정의의 결정체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며 "(이준혁 씨가) 흔쾌히 하겠다고 하셔서 너무 잘 됐다. 만나보니 사람도 너무 좋았다. 저는 사람도 좋아야 같이 일한다. ‘인기 좋은 나쁜 사람'이랑 일하기 싫어한다(웃음)"며 "선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고, 비 맞으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웃으면서 촬영했다. 너무 감사하다."고 이준혁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주연매우부터 조연, 단역, 특별 출연까지 적재적소에 최고의 캐스팅을 성공시키면서 침체되어 있는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기대작을 만들어 낸 장항준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캐스팅론'을 펼쳤다. 

 

그는 "캐스팅은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좋은 배우는 유명한 배우, 인기 있는 배우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그리고 투자를 받으려면 ‘연기를 잘하면서 인기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나리오가 1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캐스팅을 원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들 가운데 배우의 '간택'을 받는 단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캐스팅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장 감독은 "결국 캐스팅은 연출력의 정점이고, 캐스팅된 배우들을 현장에서 어떻게 설계해 주느냐도 감독의 큰 숙제다. 배우는 자기 것 하나만 생각하는 게 정상이고, 감독은 앙상블까지 봐야 하니까...그래서 저는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혹시 내가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크랭크인 전부터 배우들과 캐릭터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렇게 역사적 사실에 장항준 감독의 풍성한 상상력이 더해져 매력적인 팩션 영화로 완성이 됐다. 

 

이야기의 풍부함에 비해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 다소 짧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사진: 쇼박스)

 

장항준 감독은 이에 대해 "저도 볼 때 '이 이야기를 풀기엔 좀 짧지 않나' 싶긴 하다. 한 시간 더 해도 저는 상관없다. 근데 돈이 없지… (웃음)"라며 나름의 '현실적인 고려'가 반영된 결과임을 설명하기도 했다.   

 

인터뷰 중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과 소재, 영화의 제목, 그리고 출연 배우(유해진) 등 여러 면에서 지난 2005년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자 장항준 감독은 "‘왕의 남자’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고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왕의 남자’는 왕(연산군)도 주요 인물이지만, 중심은 공길(이준기 분) 같은 인물과 광대들이다. 대부분 사극은 왕과 외척, 영의정, 장군 같은 권력자들의 투쟁인데, ‘왕의 남자’는 결이 달랐다. 그런 면에서 관점적으로는 저희 작품이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장항준 감독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왕의 남자'와 '왕과 사는 남자'의 가장 도드라진 공통점은 역시 두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유해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해진이 오늘날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이야기 할 때 하나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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