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이유경 기자] “겉으로는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 이야기지만 결국은 너무 가까워서 미처 몰랐던 사람과 기억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예요.”
13일 서울 중구 흥인동에서 만난 배우 정문성은 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품은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성취보다 그 이면에 놓인 시간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세 우주인 가운데 착륙 순간에는 사령선에 남아 달의 뒤편을 지나야 했던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달의 앞면이 아닌 뒤편에 머물러야 했던 한 인간의 고독과 선택 그리고 기억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무대 위에서도 한 사람의 시선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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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성은 관객을 극 속 인물 패트리샤로 초대하며 너무 가까워서 미처 알지 못했던 소중함을 돌아보는 위로의 무대를 완성했다. [사진=컴퍼니연작] |
정문성은 내년 2월 8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에 출연한다.
작품은 마이클 콜린스의 직접적인 회상을 따라가며 기억과 위로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조명하는 1인극 형식으로 구성됐다. 회상 속에 등장하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동료 우주인 에드까지 모든 인물을 정문성 혼자 연기한다.
그가 이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하다. 정문성은 마이클 콜린스를 결핍이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달에 내리지 못했다고 해서 결핍된 사람은 아니다”라며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끝까지 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무대 위 마이클 콜린스는 숨겨진 영웅도 위대한 실패자도 아니다. 선택의 무게를 감당한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해석은 그의 연기 방식으로 이어진다. 정문성은 감정을 과시하기보다 필요할 때만 정확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인물이 바뀌는 순간마다 말투와 시선, 호흡은 스위치 온·오프처럼 분명히 전환되지만 감정은 넘치지 않는다. 여러 인물이 빠르게 오가도 관객의 시선이 흩어지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서사의 중심은 끝까지 마이클 콜린스에 머문다.
정문성은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인물 자체가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랐다”며 “역사 속 영웅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는 최대한 나 같고, 바로 옆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꺼냈다. “문(Moon)은 달이고 성(星)은 별이죠. 저는 밤하늘 같은 이름이에요.” 영어 이름으로도 Moon을 써왔다는 그는 “이름에 담긴 달과 별의 이미지가 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름에 ‘문’이 들어간 작품을 만난 것이 운명처럼 느껴지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모님은 ‘학문에 밝으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며 “공부를 강요받기보다는 배우가 돼 검사도 하고 의사도 하며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 늘 네 인생을 살라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연기 인생 전반과도 맞닿아 있다. 정문성의 연기 인생은 한 방향으로 규정되기보다 선택의 연속이었다.
2007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그는 올해 연기 18년 차를 맞았다. 데뷔 초부터 1인 다역을 맡아 무대 위에서 여러 인물을 동시에 감당해 왔다.
그는 “과거의 1인 다역은 캐릭터를 완전히 분리해 같은 배우라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구분이 아니다. 그는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얼굴이 아니라 여러 면이 동시에 보이는 인물을 상상하며 연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19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하던 순간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에 홀로 남아 달의 뒤편을 지나야 했다. 정문성은 이 선택을 양보나 손해로 보지 않았다.
그는 “포기한 사람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에 내리는 부담보다 더 컸을 것은 실패했을 경우 혼자 귀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고독은 작품의 한 장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작품 중반부, 마이클 콜린스가 사랑한 패트리샤는 실재 배역 없이 영상으로만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정문성은 관객을 등지고 무대 뒤편을 바라본다. 그러나 감정은 끊기지 않는다. 보이지 않을 때조차 사랑과 그리움은 이어진다.
정문성은 “무대 위에 패트리샤는 없다”며 “그래서 관객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한다. 관객이 곧 패트리샤”라고 설명했다. 이 구조 속에서 작품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그가 선택한 방향은 위로다. 그는 “다른 작품에서는 무대 위 상대역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며 “대신 관객이 나를 아껴준다는 감정을 받는다. 그래서 관객에게 더 큰 위로를 전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정문성이 해석한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달은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달은 나에게 소중한 것들의 기억이 뭉친 덩어리”라며 “너무 가까이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기적으로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주변의 감사한 것들도 더 늦기 전에 내 달에 많이 새겨 넣고 싶다”고 덧붙였다.
18년을 걸어온 배우에게도 지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문성은 “예전에는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다면 지금은 관계를 바라보는 연기를 하고 싶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옆 사람을 바라보고 사랑하면 그 마음은 결국 전달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조용히 초대장을 건넨다. “당신이 나의 패트리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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