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길고 지루해도 포기할 수 없어”…‘가능한 사랑’이 롱테이크에 담은 온기

영화/뮤지컬/연극 / 임가을 기자 / 2026-09-21 17:49:27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품에 안고 돌아온 ‘가능한 사랑’이 한국 극장가에 상륙한다.

 

▲ (왼쪽부터) 조인성, 조여정, 이창동, 설경구 [사진=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이창동 감독을 비롯해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으며, 연극 ‘벚꽃동산’의 뉴욕 공연에 참여 중인 전도연은 화상으로 함께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한국 영화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은사자상 트로피와 함께 참석한 이 감독은 “진심으로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상은 결과물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지가 훨씬 중요했다”라며, “다행히 쉽고 자극적인 영화가 아님에도 관객들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느껴주시고 반응해 주셨다. 그걸 관객들의 표정이나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기뻤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첫 상영을 마치고 쏟아지는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 설경구와 조인성이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설경구는 “영화를 두 번째로 본 건데 정말 몰입해서 봐 지더라. 마지막 장면 이후로 관객들이 박수 쳐주는 걸 보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고, 고흥에서 촬영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러면서 울음이 터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베니스에 갔다가 한국에 잠깐 있고 바로 토론토로 갔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창피해서 혼났다. 다행인 건 조인성 씨가 같이 울어 줬다는 거다”라고 덧붙여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 사진=연합뉴스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쏟아진 외신의 사인 요청도 화제가 됐다. 이에 조인성은 “혹시 오늘도 끝나고 사인받으러 나오실 거라면 미리 말씀해 주셔야지 당황하지 않는다”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이어 그는 “그때는 우리 모두 너무 당황스러웠다. 올해 운 좋게 칸도 다녀왔고 베니스도 함께하게 됐는데, 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공식 기자회견은 엄숙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르르 나오시길래 제가 뭘 잘못한 줄 알았다. 그 장면이 놀라우면서도 반가웠고, 지금도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감독님과 한국 영화의 위상을 느끼셔서 환대해 주시고 맞아주신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영화는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관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단순하고 쉽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안에 감춰진 복잡한 모습들을 여러 층위에서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라며, “어떻게 보면 해고 노동자 이야기 같기도 하고, 계급 간의 갈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와 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야기 같기도 하다. 두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을 나누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시작은 십여년 전 있었던 대기업의 대규모 집단 해고와 총파업 사건이다. 당시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이 감독은 이를 영화로 풀어내고자 했지만, ‘내가 과연 이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질문에 확답할 수 없어 접어두었다고 한다.

 

▲ 사진=넷플릭스


이러한 그가 다시 이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건 예지라는 인물이 지닌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감독은 “그들의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예지의 정체성을 통해 제 이야기를 함께함으로써 저의 윤리적 문제나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는 창작자에게는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고민이 있다. 그들의 삶을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건 저한테는 평생 해온 질문이다. 지금도 그 답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이 감독은 극 중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축소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길게 풀어냄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영화의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의 시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예지가 담으려고 하는 인터뷰와 취재 내용 자체도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그는 “해고 노동자 가족의 집단 심리치료 장면도 일반적인 영화 문법으로 보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 그들의 이야기를 넣어야만 했다”라며, “이 영화는 두 부부의 이야기이면서도 해고 노동자와 노동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이 파괴되고, 일을 잃으면서 정체성도 상실한 것 같고, 마음속에 텅 빈 자아를 느끼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 감독과 함께한 주연진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극 중 두 부부는 각기 다른 계급에 속해 서로가 낯선 삶을 살아간다. 해고 노동자의 아내이자 공장 노동자 ‘미옥’ 역을 맡은 전도연은 “돈과 계급은 어떤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그 사람의 가치를 앗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옥은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했다.

 

해고 노동자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 ‘호석’을 연기한 설경구는 “형편이 넉넉지는 않지만, 회사에 나가 노동하면서 가치를 인정받고 소박하게나마 평범하고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인물”이라면서, “해고 이후에는 자아가 깨진 상태에서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열등감과 함께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상우 부부를 만나면서 거부감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해고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감독 ‘예지’ 역을 맡은 조여정은 “예지가 경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한 것 자체가 인생의 큰 기로에서 한 선택을 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오는 결핍이 있고, 예지는 아직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라면서, “호석과 미옥 부부의 삶을 보면서 충만한 삶과 관계가 경제적인 안정감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끼며 영화를 찍었다”라고 말했다.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란 예지의 자본가 남편 ‘상우’ 역을 맡은 조인성은 “감독님과 이 캐릭터를 만들 때 기존의 자본가 모습에서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가 어떻게 우리와 밀접하게 붙어 있는지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라면서, “돈은 양날의 검인 것 같다. 돈에는 독이 있는데, 그 독을 잘 쓰면 누군가를 낫게도 해주지만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성질을 상우에게 투영해서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 사진=넷플릭스

‘가능한 사랑’이 던진 질문은 이 감독에게도 유효하게 남아 있다. 이번 신작만 해도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어 제작 자체가 불투명했던 영화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예지가 자본을 가진 상우와 살면서 나름대로 독립하려 애쓰지만,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이, 영화감독인 저 역시 자본과 결혼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창작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남의 고통을 탐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지 않나, 그게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영화가 지닌 메시지를 말했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이달 23일 극장에 개봉하고, 오는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 SW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