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프라이드’ 김경남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최대한 상처 받으려 노력했어요”

인터뷰 / 임가을 기자 / 2025-04-30 08:57:09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김경남이 말하는 ‘프라이드’의 주요 장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1958년을 살아가는 부동산 중개업자 필립과 동화작가 올리버의 첫 만남은 실비아와 함께 필립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이 장면에서 그리스의 델포이에서 들은 위로의 목소리를 전하는 올리버를 통해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는 필립의 모습은 대사 없이도 울림을 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사진=연극열전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나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살아가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잠 못 이루는 밤에 관해 얘기할 때는 같은 언어를 쓴다고 표현하기도 한 만큼 너무나 깊은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을 것 같고요. 당시에는 이 감정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미묘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 남자를 사랑한다는 확신까지는 아니라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죠.”

필립과 올리버는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림을 느꼈지만, 필립은 사랑이 시작될 때의 기분 좋은 설렘보다는 불편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김경남은 이를 “불편한 진실”이라 칭하며 필립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이성적인 의지가 계속 부딪히는 내면의 충돌이 아니었을까 싶죠. 그리고 그걸 실비아에게만큼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처드(실비아의 동성애자 연극 배우 동료)나 올리버와 실비아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불편함이 드러났고요.”


1958년의 실비아는 필립의 아내로, 필립이 생각하는 정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연정을 나누는 올리버만큼이나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는 실비아에 대해 김경남은 “필립이 ‘진짜 나’라고 믿고 싶은 그 인물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고 생각한다”면서, “필립은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옆에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비아가 곁에 있으면서 생기는 공허함, 그 채워지지 않는 감정들을 마주했을 때의 미안함, 그리고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마음이 주는 부담을 생각하려고 했어요. 실비아도 필립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 죄책감이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습하면서는 필립이 등장하지 않는 2장 2막, 실비아와 올리버가 나누는 대화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실비아가 생각하는 감정이나, 필립을 사랑하는 크기 같은 것들이 실비아와 닿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저 역시 그 부분들에 공감하면서 연기적으로도 자극을 많이 받았죠.”

이처럼 1958년의 필립은 당시 사회 속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동시에 스스로도 깊은 상처를 받는 인물이다. “어마어마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고 표현한 김경남은 필립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서로 주고받는 상처의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슬픔이라도 1차원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죠. 비참함, 외로움, 고독, 쓸쓸함. 다양한 색깔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올리버가 던지는 단어, 말,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상처를 받으려고 노력했고, 그것들이 주는 데미지의 크고 작은 차이를 느끼면서 감정을 생각하다 보면 이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사진=연극열전


반면 2008년의 필립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런던 너머로는 발도 디뎌보지 못한 1958년의 필립과 반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김경남은 2008년의 필립과 함께하는 사진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건 그 순간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필립의 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나(필립)의 뒤에서 올리버가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뒷모습 사진을 보내주었던 것 같아요. 그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올리버에게 선물로 준거에요”

이렇듯 로맨틱한 모습을 보이는 2008년의 필립은 낯선 사람과의 섹스에 중독된 연인 올리버로 인해 괴로움을 겪으며 이별을 고하기도 하지만, 친구 실비아의 노력과 올리버에 대한 여전한 애정으로 다시 한번 손을 맞잡게 된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올리버를 어떻게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자 김경남은 “전혀 이해 못하겠다”면서 솔직한 답변을 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대본에 나와 있듯이 올리버한테 미친 거죠. (웃음) 콩깍지가 씌어서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을 정도로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올리버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구나’, ‘필립이 올리버를 이만큼 사랑했구나’ 하면서 필립을 더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두 시대를 오가는 ‘프라이드’의 마지막, 프라이드 축제에서 올리버와 마주 본 2008년의 필립은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전한다. 1958년에서 2008년으로 이어진 이들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 장면을 김경남은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미안합니다’라는 다섯 음절의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정말 힘들고, 이 단어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이 장면을 연습했을 때 1막부터 쭉 이어진 감정과 순간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필립들과 올리버들도 굉장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죠. 당장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순간을 모두가 함께 경험했어요. 작품을 마무리하는 잔잔한 엔딩이지만 동시에 엄청 강력한 장면이라는 걸 느꼈고,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감정들이 이렇게 정점을 찍는구나 싶었죠. 이게 ‘프라이드’라는 작품의 힘이라는 걸 깊이 체감했던 순간이었어요.”

브라운관부터 무대까지, 다채로운 색깔로 대중과 만나고 있는 김경남에게 앞으로 어떤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지를 묻자 그는 “시켜주시는 거 해야죠”라며 너스레를 떨고 추후 펼쳐나갈 도전에 대해 말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프라이드’도 제게는 큰 도전이었고 부담도 많이 되었던 작품이지만, 이렇게 안 해봤던 것들을 해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 있어서 앞으로도 안 해봤던 것들에 대해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끝으로 김경남은 연극 ‘프라이드’를 만나게 될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 대본을 읽었던 10명의 배우가 관객의 마음으로 이 대본에 공감하고 울림을 받았듯이 관객 여러분도 저희를 통해 이 공연에서 비슷한 울림, ‘닿는 감정’을 느끼셨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이 공연이 관객 여러분에게 닿을 때까지’라는 공연 전 안내 멘트와 같은 욕심이 있습니다. ‘프라이드’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이 공연이 인생에 손꼽을 만한 연극,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관객으로서의 제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저를 믿고 한 번 보러 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한편 ‘프라이드’는 임주환, 이형훈, 김경남, 권수현, 김바다, 김이준, 김수연, 홍금비, 박성현, 이강우가 출연하며 오는 6월 22일까지 예스24 아트원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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