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新 악녀 탄생’ 임수정, ‘파인’으로 발견한 ‘배역 욕심’이라는 보물

인터뷰 / 노이슬 / 2025-08-20 07:00:19

[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자신의 몸집보다 큰 헐렁한 니트에 털부츠를 신고 호주에서 강도를 당한 뒤 ‘아저씨’를 외치면서도 당찼던 소녀 송은채. 지난해 방영 20주년을 맞이해 리마스터링 된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는 ‘젠지 세대’까지 팬층을 넓히며 레전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1년 전 송은채를 연기한 임수정이 첫 OTT 작품 도전부터 ‘새로운 악녀’의 탄생을 알렸다. 임수정은 데뷔 22년차에 ‘파인’의 양정숙으로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임수정이 출연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은 1977년, 바다 속에 묻힌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근면성실 생계형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범죄도시2’, ‘카지노’의 흥행 주역 강윤성 감독이 각색해 영상으로 펼쳐냈다. 8월 12일 기준, ‘파인’은 전 세계 OTT 플랫폼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디즈니+ 한국 콘텐츠 종합(Overall) 순위 25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또한 드라마 부문 화제성 차트 1위 달성, 배우 부문에서 임수정, 류승룡, 양세종이 각각 화제성 차트 1-3위를 휩쓸기도 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양정숙 역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파인’에서 욕망 가득한 민낯을 드러내며 결국 최후를 맞은 양정숙을 연기한 배우 임수정을 19일 종영 인터뷰에서 스포츠W가 만났다. 임수정은 “양정숙은 어떻게든 살아남지 않겠냐는 주변의 반응도 많았다. 감독님이 모호하게 연출하셨지만,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제가 표현해낸 양정숙이라는 인물을 호감있게 봐주시고, 재밌게 봐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파인’의 양정숙은 돈 앞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인물로, 천황식의 신뢰를 받는 두번째 부인이자 조력자다. 하지만 내면에 강한 야욕을 품었다. 강윤성 감독으로부터 첫 제안을 받은 당시 임수정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양정숙에 대해 고민했다. “원작이 너무 탄탄하다. 원작을 좋아해주신 분들의 기대감도 있고, 저만의 양정숙을 보여줘야겠다 생각했다. 감독님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드물다. 그래서 책임감 같은 것도 있었다. ‘악녀’를 떠올렸을 때 우리가 늘 상상하던 센 캐릭터의 전형적인 연기 스타일이나, 외향적인 스타일을 배제했다. 정숙의 대사 하나하나에는 그녀의 신념과 사랑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다 담겨있었다. 하나도 빠뜨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양정숙은 신안 앞바다에 있는 ‘보물’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부터 감춰뒀던 욕망을 드러냈고, 급기야 남편 천 회장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그의 재산을 모두 가지려다가 결국 들통이 난다. 임수정은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표정과 얼굴 근육의 음직임, 눈빛, 대사 톤까지 ‘양정숙’으로 얼굴을 갈아 끼운 사람처럼 캐릭터를 씹어먹었다. 그 결과 남성 캐릭터들이 가득한 ‘파인’에서 독보적인 매력으로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양정숙 역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처음 1, 2회 분량을 촬영할 때는 감독님께서 아직 눈빛이 선하다고 하셨다. 저도 이런 역할이 처음이니까 몰입이 덜 됐던 것 같다. 대사 톤도 바꿔보고, 포즈도 바꿔보고, 헤어 메이크업의 힘을 빌려 외형적인 포스를 강조해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감독님이 걸어 들어올 때부터 양정숙 같다고 하시더라. 양정숙 사모님 다 됐다고(웃음). 저도 연기하면서 감정에 몰입하다보니, 목소리 톤이나 일그러진 표정 근육, 눈빛을 새롭게 발견하는게 재밌었다.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재밌게 촬영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양정숙을 ‘테토녀’(우악스럽고 개척하는 여자를 일컫는 신조어)로 기억했다. 실제 ‘테토녀’ 관련 숏츠도 많이 생성됐다. 임수정은 “자기 자신한테는 솔직한 여성이다. 그게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양정숙을 ‘테토녀’로 봐주시더라. 주변에서 여성들의 응원과 지지도 많이 받았다. ‘악역인데 멋있고 시원시원하다’, ‘그녀가 다 이뤘으면 좋겠다’는 분도 계셨다.정숙에 대해 그렇게 봐주시니 괜히 흐뭇하고 기분 좋았다”고 했다.

70년대 유행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양정숙의 스타일링도 눈에 띄었다. 앞서 지난 2021년 영화 ‘거미집’으로 70년대 여배우를 연기한데 이어 두번째 시대극이었다. “모든 배우들이 같은 분장, 의상 팀과 협업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레퍼런스를 보면서 의상부터 컬러감이나 메이크업까지 70년 유행했던 스타일링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날카롭고 각도가 높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이마와 눈썹 사이에 눈썹이 있는 격이다. 그래서 각도를 강조해서 그려주시기도 하고, 헤어롤을 말아 머리를 부풀려 볼륨감을 많이 주셨다. 그 시대 여성들의 유행과 취향을 보여줄 수 있어서 재밌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양정숙 역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본 모습을 드러낸 양정숙은 텐션이 높아지면서 분노한다. 짧은 순간에 ‘양정숙’을 보여줘야 했기에 순간순간에 몰입했다. “오관석(류승룡)과 오희동(양세종)을 중심으로 서사가 흘러간다. 정숙은 많은 분량과 대사로 켜켜히 쌓아갈 수는 없었다. 짧은 순간에 한 두 장면에 등장했을 떼 그녀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했다. 모든 것을 끌어올려서 소리지르고 어지러워서 잠깐 앉아있기도 했다. 양정숙 연기하면서 제일 재밌었다.”

뭇 남성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할 정도로 카리스마 있고 도도한 그녀지만, 오희동(양세종)에게만큼은 여성으로서 사랑관을 보여줬다. 그녀는 희동의 아이를 임신, 유산하고 배신당하기까지 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양정숙의 서툰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오희동은 양심적이고 선하다. 제 곁에 있는 남자들과는 결이 다른 남자였다. 양정숙도 단박에 그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밀실까지는 단순한 ‘선물’로 지나갈 수 있지만, 아마 혼자 오희동에 대한 감정을 키워온 게 아닐까 싶다. ‘100만원을 꿔달라’고 할 때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준다. 평소 실리를 따지는 정숙의 모습과는 달랐다. 원작과는 달리 감독님은 양정숙에 입체감을 주면서 사랑에 있어서는 빈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파인’에는 류승룡, 양세종, 김의성, 김성오, 김종수, 이동휘, 정윤호 등 남성 배우들이 주를 이룬다. 신안 앞바다에서 보물을 캐는 ‘목포 팀’과 임수정을 필두로 하는 ‘서울 팀’으로 나뉘어서 촬영됐다. 임수정은 “너무 행복하게도 함께 작품에서 호흡하고 싶었던 베테랑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료배우들과도 하게 되니 저의 동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저는 서울팀이라 만나서 연기하는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편집본도 보고 현장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연기 호흡도 기본 대본과 애드리브 사이를 넘나들면서 실존 인물들처럼 연기하고 계시더라. 작품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나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가 부여되서 좋았다”고 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양정숙 역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98년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한 임수정은 ‘신예스타 등용문’으로 불린 드라마 ‘학교’ 시리즈 ‘학교4’를 통해 2001년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장화, 홍련’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싹쓸었고, 지난해 4k 버전으로 리마스터링된 레전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본격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영화 ‘각설탕’(2006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전우치’(2009년), ‘김종욱 찾기’(2009년),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까지 연이어 스크린 대표작을 경신해왔다. 이후 2017년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2019년 독보적인 워맨스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2021년 ‘멜랑꼴리아’, 2023년 영화 ‘거미집’, 2025년 ‘파인: 촌뜨기들’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작년에 ‘미사’가 감독판으로 리마스터링됐다. ‘지구 오락실’에서 봐주셨더라. 비슷한 연령대의 ‘미사 폐인’들이 새롭게 생성됐다. ‘지락실’에서 언급되면서 젠지들이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고 해서 고맙고 반가웠다. 울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하는데 너무 귀엽더라. 저는 제 작품을 부끄러워서 다시 잘 못본다. 보게 되면 연기의 부족함만 보여서 잘 안본다. 20대 때는 제가 정말 일밖에 모르고 살 때가 있었다. 연기가 너무 재밌고, 삶이 배우로서만 가득했다. 그때 박찬욱 감독, 김지운 감독 등 다 대단한 분들이다. ‘장화, 홍련’부터 본격 필모를 쌓으면서 진짜 연기도 많이 배웠다. 근데 30대에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나서는 뭔가 미지근해지더라. 일에만 몰입하지 않고 제 개인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다시 재미를 찾은 게 ‘검블유’였다, 여성들끼리의 서사가 너무 재밌었다. 그런 작품을 만나는게 배우로서 큰 행운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속도는 느리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재밌는 작품이 오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욕심이 생겼다,”

‘파인’은 임수정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지 궁금했다. “제대로 보여드린 악역 빌런이다. 그 전에 ‘거미집’에서도 잠깐 악역을 보여드린 게 있다. 정숙을 하면서 제가 재밌게 하니 시청자분들도 좋아해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배우가 스스로가 재밌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캐릭터가 배우랑 일체감을 보이면 보시는 분들을 설득해가는 것은 배우 스스로가 즐겨야한다고 깨달았다. 열린 장르의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정숙처럼 욕심이 생겼다. 배역 욕심이 생겨서 쉴틈 없이 달려볼까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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