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7년만 외출 손예진, ‘어쩔수가없다’로 모호함을 그리다

인터뷰 / 노이슬 / 2025-10-13 07:00:57

[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극의 흐름 속에 흘러가는 인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미리, 미리로서 잘 살았으면 했다.”


결혼, 출산 후 7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손예진의 얼굴은 한층 더 깊어졌다. 출산 후 육아의 경험이 곁들여진 손예진은 한 가정의 여성의 모호한 얼굴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미소가 예쁜 배우지만 그 얼굴에 모함과 인생이 담겼다. 거장 박찬욱 감독 손을 잡고 7년만에 스크린에 외출한 손예진의 복귀는 성공적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미리 역 손예진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유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 된 후 아내(손예진)와 두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개봉 13일째인 10월 6일(월) 200만 관객을 돌파, 11일 기준 250만을 넘어섰다. 이는 감독의 전작이자, 수많은 ‘헤결사’(‘헤어질 결심’ 마니아 애칭)를 생성하며 역주행 열풍을 일으킨 ‘헤어질 결심’의 최종 스코어(누적관객수 190만명)를 뛰어넘은 것으로, 박찬욱 감독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로,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국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7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손예진은 데뷔 이례 최초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취화선’ 이후 처음이었다. 기립박수 자체가 꿈같더라.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해볼 일이 많이 없다. 사람들이 박수치고, 그 속에서 환호하면서 리스펙하는데, 그 옆에서 박희순 선배는 울고 계셨다. 미리한테 감정 이입이 되서 운다고 하더라. 아마 제가 ‘취화선’으로 칸을 갔다면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자리의 귀함. 경쟁부문은 특히나 더 귀하다. 함께 그 자리에 서는게 되게 마음이 뭉클했다.”

원작을 재해석한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손에서 손예진에게 주어지며 또 한번 변화했다. 하지만 임팩트가 모호한 ‘미리’를 선뜻 선택하기엔 고민이 많았다. 7년만의 복귀작이기에 더욱 고심했다. “박찬욱이라는 감독은 배우들이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분이다. 말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가 육아 휴직 중이었다. 어떤 작품으로 복귀를 하게 될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동안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불안함이 있었다. 그것 역시도 나의 것을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주신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처음 대본 받았을 때 미리는 분량을 떠나서 캐릭터의 모호함이 있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미리 역 손예진 스틸 [사진=CJ ENM]

 

손예진은 임팩트가 모호했다고 했다. “‘이걸 꼭 해야할까.’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할 수 있는게 있을까’였는데 감독님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께 한다 안 한다를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만나보고 하겠다고 하고 내가 이걸 하는 명분을 만들어줬으면 했다. 복귀작이고 너무 감독님과 하고 싶은데 이 캐릭터를 내가 해야만 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 캐릭터는 조연이고 만수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미리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셨다. 그래서 감독님이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 않았나 싶다. 미리의 과거를 만들고, 흐름 속에 흘러가는 인물로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런닝타임상 관객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미리와 만수의 과거 서사는 ‘싱글맘’으로 시작된다. “잠깐 언급되지만 싱글맘이었던 미리에게 총각인 만수가 대시한 것이다. 우직한 만수는 순수했을 것 같다. 그걸 좋아했을 것이고, 내 아들을 누구보다 예뻐했을 것이다. 주사가 있는 캐릭터다. 인생에서 실수 같은 것을 저지르면서 미리랑 이런저런 약속을 했을 것이다. 9년째 금주를 해냈다. 만수는 최선을 다해서 가족에게 맞추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후반부에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지’ 대사가 와 닿은 것 같다.”

미리는 분량을 떠나, 남성들이 가장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리의 대사는 손예진이 만들어냈다. “미리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취미도 테니스, 댄스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한다. 만수가 해고당했다고 영상통화로 말할 때 원래 대사는 따로 있다. SNS에서 실제로 실직한 가장이 와이프 한테 실직 이야기할 때를 촬영한 다큐식의 영상을 봤다. ‘에휴 말못해서 힘들어겠네’하고 툭 던지는데 너무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대사가 바뀌었다. 실제 그걸 보면서 보통 엄마들은 ‘그럼 이제 어떡하지’ 라고 첫 마디가 튀어나가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말 못해서 그동안 힘들었겠네’ 대사가 가슴을 울리더라. 미리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뭐든 긍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우리가 살면서 그게 쉽지 않다. 우울함 속에서 결정하는 모습에 저도 대리만족 했다. 저도 쿨하고 싶지만 계획대로 해야 맘이 편하다. 미리는 타격감을 덜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미리 역 손예진 박찬욱 감독 스틸 [사진=CJ ENM]

 

박찬욱 감독과의 첫 호흡은 어땠을까. 손예진은 “역시 집요하시고 정말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는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에 디렉팅을 주신다. ‘당신 좋아하나 봐. 비싼 장어를 다 보내고’를 여러 테이크를 갔다. ‘장어’를 작게 말해달라고 하더라. 그걸 바꾸는게 정말 쉽지 않았다. 테이크를 많이 가면서 더운데 식은땀까지 났다. 앞으로 감독님은 이렇게 대사의 어미와 장, 단음을 강조하시는 건가, 난 이제 죽었다 생각했다. 근데 내가 해석한 것을 받아 주셨을 때는 행복하더라. 디테일 하게 디렉팅 해주시면 병헌 선배님은 그걸 바꾸신다. 저는 그 자리에 함께했던 것이다. 함께 하면서 재미를 느낀 것이다. 미션을 클리어했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또한 2년여간 육아에만 몰두하다가, 촬영 현장에 복귀한 소감도 덧붙였다. “제가 현장에 나가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 엄마였다가 다른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나서 2년을 쏟았다. 그 안에는 고군분투와 다크서클 계속 내려오고 온통 안테나가, 스위치가 꺼지는 시간이 없다. ‘일은 쉬운 거구나’ 할 정도로. 육아의 힘듦을 경험하고 복귀하니 얼마나 리프래시였겠나. 현장 가는 길이 너무 고요하고 행복했다. 그 현장에서 연기하는 긴장감과 몰입할 때 희열들. 너무 대단하신 선배님이랑 했다. 이병헌 선배님이랑 붙는게 대다수다. 근사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너무 행복했다.”

미리의 취미 생활이 테니스와 댄스 스포츠인 미리를 위해 손예진은 2달간 연습했다. 하지만 실제 완성된 영화에는 극히 일부만 등장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연습량에 비해 이병헌의 흐느적대는 모먼트가 주목받았다. “감독님이 인디언 복장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나중에 인디언 역할을 하라고 할 정도였다. 테니스도 초반에 많이 연습했다. 댄스 스포츠도 되게 많이 연습했다. 박지우 선생님께 배웠다. 그걸 연습하면서도 재밌었다. 스포츠 댄스 배우고 싶었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게 풀로 보여졌으면 멋있었을텐데, 이병헌 선배님이 연습 별로 없이 흔드는데, 그걸 조명하게 되더라. 보면서 정말 대단한 배우다 싶었다(웃음).”
 

▲영화 어쩔수가없다미리 역 손예진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는 모호하게 열린 결말로 엔딩을 맺는다. 그럼에도 만수의 엔딩만은 슬퍼보인다. 또한 본지 기자는 ‘어쩔수가없다’가 끝난 후 유난히 만수와 인사를 하는 미리의 웃고 있지만, 슬프기도 한 모호한 표정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손예진이 표현한 미리의 표정은 엄마이기 때문에, 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나며 ‘어쩔수가없다’라는 영화의 제목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다.

“미리는 아픈 아이를 위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만수에게 주입시킨 영향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걸 말하는 만수의 대사가 가슴이 아팠다. 당연히 이해받을 수 없는 만수지만, 미리 입장에서는 소름끼치게 무섭다기보다 안타까움이 많았다. ’엄마가 땅 파봤어’라고 말할 때. 제가 아이가 없었다면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설득하면서 대사하는 것 같은 연기를 할텐데, 그 마음이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 떨면서 감추고 싶지 않았다. 담담하게 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어봤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만수를 바라볼 때의 표정 또한, 엄마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과 표정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엔딩을 여러 해석으로 나뉠 수 있지만, 저는 비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분들은 어느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찍은 부분이 있지만 다 보여드리지 못한 설정이 많다.”

또 손예진은 “엄마가 된 후 달라진 지점은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것 같다. 성숙해 보인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나는 이래서 달라졌어요’라는 것은 좀 애매한 것 같다. 시야가 달라진 것 같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책임감으로 일을 대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나를 갉아먹더라도 온전히 해야한다는 책임감이고 스스로를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뭔가 여유가 생겼다. ‘하루를 열심히 살자’가 이해가 안됐다. ‘하루를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육아를 하면서 육아의 하루는 아이가 잠들 때만이 나만의 시간이다. 그게 하루하루의 미션이다. 하루를 무사히 넘긴 게 행복하다는 것을 육아 하면서 겪었다. 일에 대한 소중함도 생기고 나를 들들 볶지 말자. 나라도 나를 잣대로 들이대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묻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미리 역 손예진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손예진은 지난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배우 특별전을 진행하며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마쳤다. 본격 일터로 돌아온 손예진은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선다. 현재 차기작은 넷플릭스 ‘스캔들’(가제), ‘버라이어티’가 결정 촬영 진행 중이다. “’스캔들’은 촬영이 이미 끝났고 ‘버라이어티’는 10월부터 시작한다. 굉장히 새로운 시도다. ‘위험한 관계’라는 프랑스 원작이 있다. 되게 힘들었는데 재밌게 촬영했다. 캐릭터의 심리와 레이어드가 매력적이다. ‘버라이어티’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파격적인 변신일 것 같다.”

한때는 ‘첫사랑의 아이콘’으로서 청순 매력으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클래식’, ‘여름향기’, ‘연애시대’ 같은 멜로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결혼, 출산 후에는 장르에 대한 부담감이 따른다. “멜로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나한테 좋은 멜로가 들어올까라는 생각도 있다. ‘밀회’ 같은 멜로도 있지 않나. ‘사랑의 불시착’도 있고, ‘클래식’도 나이 많은 역할도 할 수 있다. 그 나이에 맞는 멜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깊이 적인 면에서는 ‘비밀은 없다’를 찍고, ‘연애시대’는 이혼녀였다. 그때는 상상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조금 더 다르게 표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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