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윳빛 점액질로 뒤덮인 지옥…‘군체’ 학습하고 진화하는 좀비의 등장
임가을 기자
coneylim64@gmail.com | 2026-05-21 09:09:31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 정체불명의 남자가 경찰에 직접 전화해 생물학 테러를 예고한다.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사했다고 신고한 그는 첫 번째 목표물에게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내부는 짐승처럼 이성을 잃은 감염체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다.
집단 감염 사태가 터진 건물은 순식간에 입구가 봉쇄된다. 교수 재임용에 탈락해 전남편이자 동료인 한규성(고수)과 함께 콘퍼런스에 참석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역시 건물 안에 고립되고, 정체불명의 감염체들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군체’는 앞서 ‘부산행’, ‘반도’ 등을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좀비 영화이다. 달리는 열차와 고립된 한반도에서 좀비 아포칼립스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 봉쇄된 고층 빌딩으로 무대를 옮겨 처절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번 영화의 핵심은 단연 감염체다. 보편적인 좀비의 이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간 ‘군체’는 무리 지어 정보를 교류하고 갱신하는 좀비를 탄생시켰다. 목을 물어뜯어 개체를 늘려나가는 방식은 기존 좀비와 같지만, ‘업데이트’라는 개념을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의 행보를 보여준다.
한 개체가 학습한 정보는 순식간에 모두에게 전파된다. 두 발로 걷는 방법부터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는 법,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법까지 익힌 감염체는 마치 AI처럼 인간을 닮아간다. 이러한 특성은 생존자 집단의 반격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감염체의 네트워크에 흘린 거짓 정보가 확인 단계 없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은 가짜 뉴스와 루머가 팽배한 우리 사회와 닮아 있어 또 다른 경각심을 심어준다.
특유의 비주얼도 ‘군체’만의 좀비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우윳빛 점액질을 토하며 변이한 이들은 진득한 액체로 온몸을 뒤덮고 있다. 이는 본능적인 불쾌감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작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알에서 막 부화한 동물을 연상시킨다. 전개가 계속될수록 증식하는 점액질은 빌딩의 콘크리트 벽과 천장을 메워, 밀폐된 공간에서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극적인 시각적 변화를 보여준다.
생존자 무리의 중심에 선 전지현은 사건을 주도적으로 헤쳐 나가는 역할을 맡았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냉철한 지성과 뜨거운 정의감을 지닌 캐릭터를 소화한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전남편의 현 부인인 신현빈과 연대하는 서사로 눈길을 끈다.
권세정 이외에 생존자 무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지창욱이 맡은 최현석이다. ‘군체’에서 강도 높은 액션을 도맡은 그는 극 중 특정 기점에서 극적으로 변화하며, 좀비 장르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무기인 식칼로 무자비하게 좀비를 학살한다. 걷지 못하는 장애를 지닌 누나 최현희(김신록)와의 끈끈한 유대도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생존자 무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테러 주범 서영철이다. 이를 연기한 구교환은 냉소적이며 능청스러운 메인 빌런을 탁월하게 소화한다. 특히 좀비 사이를 유유히 누비며 얼굴의 움직임으로 이들을 조종하는 모습은 네크로맨서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적인 성격과 확고한 가치관은 서영철을 ‘군체’의 매력점으로 자리 잡게 했다.
‘군체’는 확실한 장르적 매력을 선사한다. 그동안 본 적 없는 신선한 좀비의 활약상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팽팽한 긴장감과 적절한 잔혹함으로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다만 초반부의 강렬한 흡인력에 비해 서사의 비약은 아쉬움이 남는다. 거대한 재앙을 예고한 것에 비해 핵심 문제가 너무도 쉽게 풀리며, 생존자 무리 내의 갈등을 특정 조연의 민폐 행동에 의존해 풀어내는 방식은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한편 ‘군체’는 현재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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