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장면 일부러 망가뜨렸죠”…‘지느러미’ 거친 질감으로 완성한 근미래 한국
임가을 기자
coneylim64@gmail.com | 2026-07-11 07:00:32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돌연변이 인류가 등장한 근미래 대한민국을 그린 영화 ‘지느러미’가 극장가를 찾는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지느러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박세영 감독을 비롯해 김푸름, 고우가 참석했다.
‘지느러미’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지느러미가 생겨난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담은 영화다. 인간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던 오메가 한 명이 구역을 이탈하고, 이를 공무원 ‘수진’이 쫓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영화는 ‘다섯 번째 흉추’,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등을 선보인 박세영 감독의 신작으로, 연출은 물론 각본과 촬영까지 직접 맡았다. 11년 전 제작한 동명의 단편 작품에서 시작한 작품은 4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거쳐 스크린에 걸리게 되었다.
개봉 전부터 국제적인 행보를 이어간 작품은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후,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났다. 특히 ‘지느러미’를 처음 공개한 로카르노영화제는 동명의 단편 작품을 출품했던 곳으로 의미를 더한다. 박 감독 역시 “이 영화의 시작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크레딧에 의외의 인물이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과 ‘더 스퀘어’ 등 화제작을 만들어낸 프로듀서 필립 보베르가 제작에 참여한 것.
박 감독은 “제 전작인 ‘다섯 번째 흉추’가 사라예보 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저에게 먼저 말을 거시며 영화를 보여달라고 하셔서 당시 촬영해 둔 ‘지느러미’를 보여드렸고, 영상을 보시더니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고 제안을 하셨다. 이후 3~4년 동안 같이 편집을 진행했다”라고 필립 보베르와의 인연을 밝혔다.
돌연변이의 존재도 ‘지느러미’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다. 극중 오메가는 인간들과 다른 외형을 지녔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며 독성 폐기물을 수집하는데 착취된다. 박 감독은 이 설정을 구축한 과정에 관해 “소수 민족이나 소수자들이 도시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 나가다 결국 항상 해안가 쪽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차별받게 되고, 프로파간다나 이미지 세탁에 의해 어떻게 변형되어 인식되는지 생각하면서 이 존재들을 떠올렸다”라며, “극 중 사회는 신체에 작은 결함이 있거나 외모가 독특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오메가로 지정받는 구조다. 그래서 되려 인간과 오메가의 경계를 흐릿하게 설정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지느러미’ 속 무너진 세계는 특유의 거친 질감과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된다. 영화가 지닌 독특한 비주얼이 만들어진 배경은 의외로 ‘빨리, 많이’ 찍어내는 촬영 방식에 있었다.
박 감독은 “세팅을 많이 하지 못한 채로 여러 장소에서 찍어보는 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밤에 촬영할 때 너무 어둡게 찍혀 화면이 지저분했다. 그럼에도 그 장면을 꼭 쓰고 싶어서 일부러 깨끗하게 찍힌 장면들을 그 장면에 맞춰 조금씩 훼손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질감이 나오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개나 오염 같은 설정들도 현장에서 발생한 순간들 때문에 영화적인 기능으로 설정되었다. 촬영할 당시에는 장벽 설정도 없었고 많은 설정이 비어 있었다. 후반 작업 중 많은 것을 발견하고, 수습하는 과정에 의해서 지금의 세계관이 나오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해 놀라움을 줬다.
오염된 세계를 그린 만큼 인물 대부분은 검은 때를 덕지덕지 묻힌 얼굴과 잔뜩 떡진 머리로 등장한다. 이러한 비주얼에 관해 박 감독은 “세계관 속에서 물이 부족하다 보니 공기가 더럽다는 설정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깨끗한 얼굴이 수치의 상징이 되고, 더러운 얼굴이 자부심이 되는 아이러니한 세계관을 설정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배우들이 각자 셀프 분장을 했다. 촬영 현장에 오면 흙바닥에 누워 뒹굴며 옷을 더럽혔고, 알아서 오징어 먹물로 치아를 변색시키거나 얼굴에 직접 분칠을 했다. 나중에는 다들 익숙해져서 그 모습 그대로 밥을 먹었다”라고 이색적인 촬영 풍경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김푸름은 “ 유일하게 촬영장 갈 때 아침에 머리 안 감고 가도 되는 촬영 현장이었다”라고, 고우는 “분장하고 밖에 나가면 많이 불쌍하게 보시더라. 한번은 대기하다가 공원 벤치에 누워있었는데 어르신이 오셔서 근처에 센터 있으니까 가라고 하시더라. 감사하다고 하고 넘어갔다”하는 에피소드를 풀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11년간 박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작품에 참여한 고우는 구역을 탈출한 ‘오메가’로 분해 연기를 펼쳤다.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른 밴드 ‘유기농맥주’와 2인조 밴드 ‘위키’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는 고우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대사를 실제로 말하고 연기해보고 싶어서 이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라며, “세계관이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낯설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에 관해서 스스로 탐구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돌연변이라는 독특한 역할을 연기하며 중점을 둔 부분으로는 수동적인 태도와 변화를 꼽았다. 고우는 “차별적인 사회 구조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을 거라 겉으로 드러나는 도드라진 성격이 없고, 표정이나 감정 자체를 숨긴 채 잘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며, “이야기가 흘러가면서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내 가는 방식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연기도 감정이 서서히 피어오르는 변화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말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김푸름은 오메가 관리 신입 공무원 ‘수진’ 역을 맡아 차가운 사회 시스템에 의문과 흔들림을 느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김푸름은 “이전부터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유튜브에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같은 콘텐츠를 잘 챙겨보고 재미있어해서 꼭 참여해보고 싶었다”라며, “가장 어둡고 모순적인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딱 맞게도 제가 원하던 역할을 연기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김푸름은 본인이 맡은 ‘수진’ 역에 관해 “선과 악을 아직 잘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표현했다. “첫인상은 갑자기 신념이 생겨버린 어린 짐승 같았다”라며, “본능적이고 자신의 신념이 확실하지만, 정작 그 신념을 왜 갖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보지 않는다. ‘무조건 이래야 해’라는 생각에 갇혀버린 존재가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가진 신념에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로 해석했다”라고 연기에 주안점을 둔 부분을 밝히기도 했다.
‘지느러미’는 ‘호프(HOPE)’, ‘오디세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등 대작들과 경쟁하게 된다. 이에 박 감독은 “다른 영화들을 다 보시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으신다면 저희 영화도 한 번쯤 떠올려 주시면 감사하겠다”라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4년 동안 적은 인원으로 각자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노동 강도가 결과물의 아웃풋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희가 흘린 진땀이 영화의 텍스처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감사하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한편 ‘지느러미’는 오는 22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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