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라’를 걷는 파란 사람들…지는 선거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식

<빨간나라를 보았니>,임미애·김현권 등 경북 민주당 후보들의 패배가 남긴 의미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다시 묻는 한국 민주주의…최전선에서 ‘변화’의 싹 틔워
‘빨간 나라’와 ‘파란 나라’를 넘어 ‘우리나라’로 가는 길을 전하다

박종진 기자

krbdm21@gmail.com | 2026-05-29 17:02:18


[SWTV 박종진 기자] 6·3 지방선거가 4일 앞으로 다가왔고, 29일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정치 과정에서 변하는 것과 함께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역주의'라는 뿌리깊은 정서다. 
 
영화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지역주의 벽 앞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묻게 하는 다큐멘터리로, 지난 4월 개봉한 이후 26일 오후 7시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사실상 영화관 상영을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는 주인공 격인 임미애·김현권 부부와 홍주현 감독, 영화관 대관 등 관객 참여에 큰 역할을 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했고, 상영 후엔 전찬일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의 한 장면.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후보가 국민의힘 선거운동원들 너머에서 유권자를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홍주현 감독의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선거 승리의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패배가 거의 예정된 선거, 승산 없는 도전, 지지자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조차 어려운 지역에서 끝까지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중심에는 “누가 이겼는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선거는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만 치르는 것인가. 어떤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무투표 당선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질 때, 그것은 과연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경상북도라는 정치적 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경북은 오랫동안 보수정당의 압도적 우세가 이어져 온 지역이다.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되고, 후보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은 곳이다. 
 
영화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에 도전한 임미애를 시작으로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을)에 출마한 김현권을 중심에 놓되, 이들 부부 정치인만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안동, 영주, 김천, 영천, 고령 등 경북 곳곳에서 민주당 이름으로 선거에 나선 김상우·박규환·황태성·이영수·정석원 후보들과 운동원들의 얼굴을 함께 비춘다. 그들은 모두 진다. 그러나 영화는 바로 그 패배의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의 품격과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임미애 후보. ⓒ트리플픽쳐스 제공
 
이기는 선거만 선거인가
 
영화의 가장 큰 주제의식은 ‘지는 선거의 의미’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흔히 승패의 숫자로만 평가된다. 몇 퍼센트를 얻었는지, 상대와 격차가 얼마였는지,  다음 공천 가능성이 남았는지가 정치적 성패를 가른다. 
 
그러나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이 계산법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마하는 사람들, 선거 때마다 빚을 지고 적금을 깨면서도 다시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 “어차피 질 건데 왜 하느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침마다 출근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임미애의 2022년 경북도지사 출마는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적으로도 어려운 분위기였고, 경북은 더욱 척박했다. 국민의힘 이철우 후보의 무투표 당선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임미애는 모두가 말리는 선거에 나섰다. 그가 얻은 득표율은 당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경북 민주당 정치의 기준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그 과정이었다. 유권자가 명함을 거절하고, “1번은 싫다”고 말하고, 지지자조차 주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응원하는 곳에서 임미애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현권의 2024년 구미을 출마 역시 마찬가지다. 김현권은 이미 농어촌 몫의 비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지만, 경북 지역구 선거에서는 세 번 출마해 모두 패한 싸움을 치렀다. 영화 속 그는 도로 위에서 큰절을 하고, 시민에게 고개 숙여 지지를 호소하며, 이 선거를 인생의 마지막 선거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쏟는다.  사람들의 지지는 이전보다 더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냉정하다. 영화는 그 냉정함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냉정함을 알면서도 끝까지 뛰는 사람들의 표정, 농담, 피로, 눈물, 체념과 희망이 뒤섞인 순간을 붙잡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떠나 부산에서 낙선했고, 그 패배는 훗날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러나 〈빨간 나라를 보았니〉가 보여주는 경북의 현실은 더 장기적이고 더 고단하다. 누군가 한 번의 상징적 패배로 지역주의를 깨뜨리는 서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후보와 당원들이 십수 년 동안 같은 골목과 시장을 돌며 조금씩 균열을 내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승리의 순간에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패배의 반복 속에서도 겨우 버틴다.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후보가 유권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홍주현 감독이 본 ‘성실하게 지는 사람들’
 
홍주현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는 단순한 정치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는 경북 구미에 사는 친구로부터 임미애라는 후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임미애를 ‘여자 노무현’이라 말했지만, 감독이 실제로 만난 임미애는 노무현과 같고도 달랐다. 선거운동 한복판에서 홀로 식당에 앉아 있던 후보, 출마를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이기는 선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라고 답한 사람이었다. 그 말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됐다.
 
홍 감독이 카메라로 포착한 것은 거창한 이념보다 삶의 태도다. 그는 경북 민주당 후보들을 두고 ‘성실하게 지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 표현은 패배를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그 과정이 성실하면, 그 성실함 자체가 민주주의의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는 새벽 거리에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거절당해도 다시 웃으며 다가가고, 욕설이나 냉대를 당해도 다음 골목으로 걸어가는 태도. 감독은 그 반복을 수행처럼 바라본다.
 
영화가 알리고자 한 핵심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경북 민주당 후보들의 도전은 중앙정치의 명령에 따른 ‘출마 이벤트’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경북은 잠시 머무르다 떠날 곳이 아니다. 태어나고, 돌아오고, 가족과 이웃이 사는 터전이다. 지역정치가 한쪽 세력의 독점 구조로 굳어질 때 예산과 행정, 인사와 개발, 생활의 우선순위까지 왜곡될 수 있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단지 정당 간 경쟁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 지역에도 다른 목소리가 있다”고 증명하는 행위다.
 
홍 감독은 이들을 통해 “희망을 극복한다”는 역설적 메시지도 제시한다. 보통 정치인은 희망을 말한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 이번에는 바뀔 수 있다, 바람이 분다, 판세가 달라졌다. 하지만 경북의 민주당 후보들은 매번 희망에 속고, 다시 현실 앞에 선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다만 희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다. 승리라는 먼 미래에만 삶의 의미를 걸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한다. 명함 한 장, 악수 한 번, 출근길 인사 한 번이 쌓여 언젠가 지역의 공기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 포스터. 트리플픽쳐스
 
임미애와 김현권, 부부 정치인의 다른 결
 
영화에서 임미애와 김현권은 부부이자 정치적 동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결이 다르다. 임미애는 경북 민주당의 ‘왕언니’ 같은 존재로 비친다. 그는 상대를 무조건 적대하지 않는다. 왜 반대하는지 묻고, 듣고, 대화의 틈을 찾는다. 동시에 부당한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 진영의 거친 압박 앞에서 후배 후보와 운동원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는 장면은 임미애 정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포용과 단호함이 함께 있는 정치인이다.
 
임미애의 정치적 이력도 영화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그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세대적 경험을 가진 인물이지만, 중앙정치의 엘리트 코스만 밟은 사람은 아니다. 남편 김현권의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지역에서 생활하며 정치에 들어섰다. 군의원, 도의원, 도지사 후보, 그리고 국회의원에 이르는 길은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지역의 밑바닥에서 쌓아 올린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선거운동은 외부인이 경북을 ‘공략’하는 모습이 아니라, 경북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다시 말을 거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김현권은 보다 선비적이고 원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숫자와 예산, 정책 구조를 들여다보는 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소개된다. 동시에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쉽게 접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성정은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지역 유권자와 당원에게는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속 김현권의 큰절은 단순한 선거 퍼포먼스가 아니다. 경북에서 민주당 후보로 살아온 세월, 반복된 낙선, 그래도 다시 이웃 앞에 서겠다는 다짐이 한 몸짓에 담긴다.
 
두 사람의 고군분투는 한국 민주주의와 직결된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투표일에 유권자가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선택지가 있어야 하고, 경쟁이 있어야 하며, 소수 의견이 공개적으로 말해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지역에서 한 정당의 후보만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처럼 남고, 다른 정당 후보가 출마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조롱받는다면 민주주의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내용은 빈약해진다. 임미애와 김현권, 그리고 영화 속 경북 민주당 후보들의 존재는 바로 그 빈틈을 메우는 시도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의 한 장면. 임미애 후보가 홀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트리플픽쳐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와 지역주의의 벽을 허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정치 지형을 단숨에 바꾸기는 어렵다. 영화 한 편을 본다고 경북의 투표 성향이 급변하거나, 호남과 영남의 정치적 대립이 곧바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지역주의는 선거 전략, 언론 환경, 산업 구조, 인맥과 생활세계,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정서가 얽힌 복합적 현상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정치적 선택이 개인의 신념을 넘어 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동네 모임, 장사, 친척 관계, 일상적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힘은 다른 데 있다. 이 영화는 지역주의를 추상적인 정치 용어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로 보여준다. ‘경북은 보수’, ‘호남은 진보’라는 도식은 너무 쉽다. 그 도식 속에서는 지역 내부의 다양한 시민이 지워진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경북 안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며, 지역 독점 정치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모두 악의적 존재라는 식의 단순화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주의를 깨려면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밥을 먹고, 마을 일을 하고, 봉사단체와 동호회 속으로 들어가 일상의 신뢰를 쌓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민주당에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당은 정말 경북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선거 때마다 험지 후보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실제 조직과 인력, 장기적 지원을 충분히 해왔는가. 지역주의 타파를 말하면서도 정작 어려운 지역에서 버티는 사람들을 상징으로만 소비한 것은 아닌가. 영화가 보여주는 고군분투는 민주당의 영광이라기보다 민주당이 감당해야 할 숙제에 가깝다. 경북 후보들이 민주당의 이름으로 뛰고 있지만, 그들의 싸움은 특정 정당의 이해를 넘어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을 지키려는 싸움이다.
 
관객에게도 질문은 돌아온다. 우리는 이기는 사람만 기억하는 정치문화에 익숙하다. 당선자에게만 마이크를 주고, 패배자는 곧 사라진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넘는 민주주의는 패배자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 낙선했지만 다음 후보가 명함을 내밀 수 있게 길을 만든 사람, 선거비용 보전선만 넘겨도 지역 조직이 숨을 쉴 수 있게 한 사람, 주민에게 “민주당 후보도 우리 동네에 계속 있구나”라는 기억을 남긴 사람. 이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을 때, 지역정치의 토양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임미애(왼쪽)와 김현권은 경북 의성군에 귀농해 소를 키우며 선거에 출마했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빨간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빨간 나라를 보았니〉가 던지는 최종 질문은 제목에 있다. 우리는 정말 ‘빨간 나라’를 보았는가. 혹은 ‘파란 나라’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대한민국 안의 지역들을 서로 다른 나라처럼 상상해온 것은 아닌가. 이 영화는 경북을 조롱하거나 계몽하려 하지 않을 때 가장 힘을 얻는다. 경북을 보수의 아성으로만 부르는 순간, 그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시민은 사라진다. 반대로 경북의 압도적 보수성을 외면하면, 그곳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겪는 현실의 무게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사람을 본다.
 
임미애와 김현권, 그리고 경북 각지의 민주당 후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변방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이 서 있는 곳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이미 이길 수 있는 곳에서 이기는 일은 중요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으려는 곳에서 선택지를 만드는 일은 더 근본적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이지만, 동시에 소수의 존재를 보장하는 질서다. 경북에서 파란 점퍼를 입고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은 그 질서를 몸으로 증명한다.
 
영화가 지역주의의 벽을 당장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벽에 금을 낼 수는 있다. 관객이 경북 민주당 후보를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으로 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또 민주당이 험지 출마자를 선거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 조직과 지역 공동체 속에서 오래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면 영화의 정치적 의미는 더 커진다.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라도 그 안에는 다양한 삶과 불만, 기대와 균열이 있다. 그 균열을 증오가 아니라 관계로 넓혀가는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민주당 후보들의 선거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특정 지역이 한 정당의 영토처럼 굳어지고, 다른 목소리가 침묵하거나 조롱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이 영화 속 후보들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민주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때로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사람들 덕분에 다음 선거까지 살아남는다. 
 
경북 고령·성주·칠곡에 출마한 정석원 후보는 "왜 지는 선거에 나왔느냐"는 질문에  “워낙 척박한 곳이니 당장 꽃은 될 수 없어도 거름이 되면 언젠가는 꽃을 피울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의 고령군수 무투표 당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건강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거름'을 자처한 셈이다. 
 
‘빨간 나라’와 ‘파란 나라’를 넘어 ‘우리나라’로 가는 길은 거창한 선언으로 열리지 않는다. 새벽 거리에서 건네는 인사, 거절당한 명함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 손, 큰절을 하고도 웃는 얼굴, 만석 가까운 작은 상영관에서 함께 울고 웃는 관객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홍주현 감독은 상영회를 신청한 관객들에게 '드레스코드는 빨강'이라는 단체문자를 보냈다. 빨강을 해방시키자는 뜻으로, 정치적 입장으로 상대를 한가지 색으로 규정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였다. 이날 문자를 받은 관객들 거의 모두가 빨강을 입고 와 '빨간 나라'를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을 시사했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가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순하다. 이기는 사람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지는 사람도, 그 역사를 함께 만든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뿌리가 자란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 겸 더불어민주당 선임 부대변인, 김현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위원장,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 홍주현 감독, 전찬일 영화평론가. 민생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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