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데뷔 후 영화 4연패(連敗)"...이병헌이 띄웠던 '승부수'

노이슬

hobbyen2014@gmail.com | 2025-04-09 07:00:08


[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특히 스포츠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엄격하게 이분법으로 구분지어져야 한다. 개봉 2주차 주말, 100만 고지를 넘어선 영화 '승부'는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것을 넘어서, 승부사 조훈현을 통해 다시 딛고 일어서는 힘과 그 여정을 그려내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병헌은 '조훈현 9단'과 놀라운 싱크로율로 다시 침체된 극장가에서 흥행 승부사 기질을 발휘 중이다.
 
영화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9일(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수 143만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 180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영화 '승부' 조훈현 역 이병헌/㈜바이포엠스튜스디오
 
'승부'는 마약 투약 혐의로 물의를 빚은 유아인으로 인해 6년동안 표류 끝에 관객들을 만났다. 당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 를 만나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병헌은 "일단 6년동안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이라 그런지 이게 극장에서 보여진다는게 너무너무 기뻤다. 그동안 힘들었을 사람들이 얼마나 함께 기쁠까 생각하니까 저도 신났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너무 좋아하는 저로서는 OTT도 장점이 있지만 극장 개봉이 신났다"며 기뻐했다.

영화는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국수, 두 사제지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2000년대 스포츠계에 김연아, 박지성 등 선수들이 전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다면, 80년대, 90년대에는 바둑의 신 조훈현 국수가 있었다. '승부'는 바둑계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과도 같은 전설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이병헌은 조훈현 국수의 8대2 가르마부터 정돈되지 않은 눈썹 등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표현했고, 과거 조 국수가 경기에서 입었던 의상 등으로 완성했다. 또한 실제 과거 사진, 영상 자료 등을 바탕으로 그의 다리 떠는 버릇, 돌을 두는 손 모양, 와기(누워서 바둑을 두는 자세) 자세 등까지 재현하며 싱크로율을 높였다. "영화 하기로 결정한 날에 바둑판을 집에 두고 늘 연습했다. 그분들은 수십년동안 하신 분들이다. 그렇게 보여지게 끔 하려면 버릇처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연습을 했다. 조 국수님이 농담처럼 하신 이야기가 있다. 다른 작품에서 보셨는지 바둑 돌을 아무렇게나 놓지 말라고 하셨다. 돌을 놓는 방법도 다 있다. 벽에 딱 달라붙는 느낌, 본드처럼 붙는 느낌이다. 돌이 빽빽하게 있을 때는 옆이 흔들리지 않게 두는 방법 등을 연습했다."
 
▲영화 '승부' 조훈현 역 이병헌과 조훈현 국수 실제모습 비교/㈜바이포엠스튜스디오
 
'승부'의 가장 큰 포인트는 조 국수가 자신이 10대 시절부터 키우고 가르치며 동거동락한 제자 이창호(유아인)로부터 처음 패배를 맛보게 되는 순간이다. "처음 씬을 읽으면서 승패가 갈리는만큼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자신이 키우고 데리고 살면서 먹고, 자고 가르쳐준 제자와 같이 결승에 올라온 현황판을 보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감정이다. 거기부터가 이 드라마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조 선생님도 그 말씀을 처음 하셨다. 전혀 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그랬기 때문에 당혹스러움은 감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에서 진 후 취재진이 다가오지 않나. 거기서는 아무렇지 않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삐질삐질 세어나오는 당혹스러움은 자신도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도망쳐 나오듯이 나와서 이창호 부를 마주치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비로소 숨을 쉬면서 허공을 바라보는 감정을 표현하는게 저도 어려었다. 감독님께 여러 테이크를 부탁했고 며칠 후에는 감독님께 재촬영할 마음 없냐고 묻기까지 했었다."

해당 장면을 영화로 마주한 조 국수의 반응도 궁금했다. 이병헌은 조 국수가 '승부' 시사 날 방문했다며 "시사하는 날 갑자기 오셔서 이세돌 구단이랑도 처음 같이 인사를 나눴다. 조 구단님이 영화 스틸을 보고 본인인 줄 아셨다고 하시더라. 칭찬을 해주려고 일부러 오셨나 생각에 흐뭇했다. 영화를 보시고는 그 당시의 감정이 많이 떠오르셨나보더라. 본인이 겪은 일이니 당시의 마음이나 이런 것들을 떠올리셨다고 하더라. 향수가 드셨던 것 같다"고 했다.

'승부'는 바둑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지만, 바둑 룰이나 전문용어를 몰라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둑에 대한 이야기 아닌, 바둑에 빗댄 인생 이야기다. 특히 제자에게서 예상치 못한 패배의 맛을 맛보고 충격과 좌절감에 휩싸이지만, 결국은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조훈현 국수의 칠전팔기 승부사 정신은 그 어떤 조언보다 와닿는다.
 
▲영화 '승부' 조훈현 역 이병헌 포스터/㈜바이포엠스튜스디오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정서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미묘한 감정들이 이 영화의 전체에 중요한 핵심이 되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문정희(정미화 역)씨 역할이 이 영화에 맞는 감성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조 국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이다.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다. 바둑이 인생이라는 말은 어르신들에게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 다 망한것 같은데 결국 한 지역 때문에 결국 승자가 되기도 한다. 다 이긴 판인거 같은데 어느 한 곳을 소홀히 해서 패로 가는게 여러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했다."

데뷔 34년차 믿고 보는, '연기 9단' 이병헌에게도 조훈현 국수처럼, 성장의 모티브가 되는 선배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한테 되게 무서웠던 선생님이 계신다. 박근형 선생님이다. 선생님처럼 연기를 해야지, 야단을 덜 맞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분이다. 실제 같이 작품하면서 야단도 맞아서 피해다닌 적도 있지만, 그렇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이병헌은 1991년 KBS 공채 14기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KBS 대하드라마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에 출연했고, 1992년에는 '내일은 사랑'에서 뭐든지 잘하는 만능 대학생 역으로 박소현과 함께 나와 청춘 스타가 되었다. 출연하는 모든 작품이 흥행하는 것은 물론, 연기에 대한 호평 세례는 항상 붙어다닌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리즈로 다시 한번, 글로벌 스타로서 위엄을 떨치고 있는 이병헌. 모든 선후배 연기자들에 귀감이 되는 배우 이병헌도 조훈현 국수처럼 좌절의 순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승부사의 기질을 발휘한 적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데뷔 초반을 떠올렸다.
 
▲영화 '승부' 조훈현 역 이병헌/㈜바이포엠스튜스디오
 
"저는 TV로 처음 시작을 했다. 데뷔하자마자 운 좋게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은 배우였다. 3~4년 있다가 처음으로 영화 제의를 받았다. 그때 저는 '주목받는 신인' TV가이드에도 항상 나왔다. 근데 영화 시작하고서는 4편('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런어웨이', '그들만의 세상', '지상만가')을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당시 충무로에는 '영화 2편 정도 망하면 다시는 캐스팅 안 한다'는 썰이 있었다. 근데 저는 연속해서 4편을 망했다. 그때 영화 선배들이 '4편을 말아먹은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했다. '충무로의 미스터리'라고 했었다(웃음). 그 당시에 저는 첫 영화 제작발표회 때 '영화배우 이병헌입니다'라고 인사했다. 내가 영화가 좋으니까. 그때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민망함은 없다. 관객들의 숫자 자체만 봐도 좋았고 신이 났다. 그렇게 4편을 말아 먹었다. 당시 참 순수했던 것 같다. 마냥 신나서 했다. 책임감은 없었다. 5번째 만난 영화가 '내 마음의 풍금'이었다. 6번째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났다. 5번째 영화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약간 작품을 보는 시각을 바꾼게 있다. 그 전에는 캐릭터만 봤다면, 이번에는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주는 정서가 뭔지 시각을 바꿨다. 그때가 20대 초반이다. 그때는 숫자로만 얘기하기 시작하던 때다. 숫자로만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있어, 비꼬는 말투였다. 시상식에 올라가서 '흥행배우 이병헌입니다' 라고 했었다."

이병헌에게도 연기는 여전히 어렵고 답이 없다. "연기가 다른 대중 예술과는 다른 지점인 것 같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뭐 하나를 연마하면 연기가 달려졌다 좋아졌다는 것이 없다. 그게 없으니까 뭘 해야되는지를 갈피를 못잡는 경우가 많다. 짤막하게나마 그 인생을 살아야 한다. 관찰을 많이 하고 유추해야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직접 만나 관찰을 못하면 책, 좋은 영화 많이 보라고 하는게 그 많은 것들을 보면 인간을 좀 더 넓게 이해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게 시각을 좀 넓힐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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