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이 죽였다’의 무채색 이유미, 실제로는 알록달록 상상부자

노이슬

hobbyen2014@gmail.com | 2025-12-04 07:00:39


[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장강이 살아 돌아와서 집 비밀번호를 누를 때, 지구 핵까지 갔다 온 심정이었다.”

배우 이유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안쓰럽다’이다. 그의 데뷔작 영화 ‘박화영’부터 ‘어른들은 몰라요’, ‘인질’, 대표작이 된 글로벌 히트작 ‘오징어 게임’까지 맡은 바 캐릭터를 너무 완벽하게 소화하며 호평 받았기에 이유미의 이미지에는 측은함이 따른다. 가정 환경으로 인해 크게 상처 받고 삐뚫어지거나, 착한 성미로 희생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물론 ‘멘탈코치 제갈길’이나 ‘힘쎈여자 강남순’, ‘Mr. 플랑크톤’으로 누구보다 밝고 명랑한 캐릭터도 선보여왔지만, 밝은 이미지를 굳히기도 전에 이유미는 다시 또 어두워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로 또 한번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극 중 조희수는 뼈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에 얼굴의 상처가 지워질 날이 없었다. 희수는 폭력 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며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하는 남편 노진표(장승조)에게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조희수 역 이유미 [사진=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는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전 세계 통틀어 시청 시간 1위를 기록, 3주차에는 4위 4주차에도 여전히 넷플릭스 비영어작품 TV 쇼 부문에서 6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흔하지만 처벌의 기준이 모호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그린 ‘당신이 죽였다’. 가정폭력은 신고를 해도 ‘부부간의 약간의 말다툼이었다.’ ‘별일 아니다.’라는 대수롭지 않은 변명으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왔다. 그렇기에 가정폭력 피해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에서 혼자 버텨낼 수 밖에 없다. 희수에게 지옥 같은 나날이 계속되던 중 단짝친구 조은수(전소니)가 모든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다.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배우 이유미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 평소 자기 전에도 재밌는 상상을 할 정도로 N성향이 강한 그는 희수를 이미지화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감독님께서 편지와 함께 책도 선물해주셨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단편집으로 엮은 책이었다. 잠이 안 올 때 읽겠다며 한장 한장 읽다보니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룬 기억이 있다. 새삼 내가 너무 몰랐던 이야기였다.”

이유미는 한층 더 외소해 보이는 희수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 당시 36kg까지 건강하게(?) 감량했다. 그가 택한 조희수의 포인트는 ‘무채색’이다. “이유미로서 그런 경험이 없다. 희수라는 사람에 대입하고. 희수를 이미지화 하다보니 어느 순간 이미지에서도 힘이 빠지더라. 내가 그려낸 희수는 처음에는 강한 부정과 애쓰는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피해를 입고 힘이 빠지는 희수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됐다. 기본적으로 평소 40, 41kg인데 36kg까지 감량했다. 연기할 때 일부로 수분기 없게 매트함을 유지하고, 립밤을 발라본 적이 없다. 입술은 일부러 다 트게 만들고, 진표의 아내로서 보여질 때 외에는 무채색으로 있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텁텁한 이미지를 하고 싶었다. 대사 보다는 행동이나 표정, 호흡 소리 같은 것들로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있는 희수의 모습은 마치 바람빠진 풍선의 느낌처럼 공허하게 보이려고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조희수 역 이유미, 조은수 역 전소니 스틸 [사진=넷플릭스]
 
남들 앞에서는 세상 다정한 남편, 아내에게 챙김을 받는 좋은 남편 코스프레를 하는 노진표. 집으로 돌아와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지옥은 시작된다. 폭력을 가한 후 그는 미리 준비한 목걸이, 팔찌 등 액세서리를 선물하며 사과한다. 또 직접 착용하게 하고 상처가 가득한 몸과 얼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유미는 “저도 이정림 감독님께 매번 폭력을 행사한 후 사진으로 기록하는 진표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했었다. 감독님은 하나의 기록이라고 하셨다. 본인에게 있어서 희수를 때리고 선물을 주고 사진촬영까지는 하나의 루틴이라고 하더라. 매번 당연한 절차였기 때문에 그렇게 사진도 액세서리도 쌓여있는 것이다. 이유미로서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푹푹 나왔다”고 답했다.

조희수로서 감정 소모도 심할 수밖에 없다. 이유미는 “처음으로 감정 영향에 대한 걱정을 했다. 고민 끝에 이유미와 희수를 완벽하게 분리시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서 고민하고 상상할 때는 괜찮은데, 현장에서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카메라 앞에서만 희수로 존재하자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촬영 전에 들었던 걱정이 없어졌다. 의식적으로라도 분리를 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남편 노진표로 함께 호흡한 장승조는 역대급 악역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연기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앞서 ‘당신이 죽였다’를 함께한 이정림 감독, 배우 전소니, 이무생은 배우 장승조는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유미 역시 동의했고, 캐릭터에 몰입해 연기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승조 선배님은 너무 좋은 분이다. 너무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이니까 마음이 아프긴 했다. 선배님으로서 되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하는 사람이 힘들 것 같았는데, 눈 앞에서 행하는 사람을 직접 보니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 카메라만 돌면 어떻게 그렇게 변하는지 정말 엄지를 추켜 세웠다. 항상 현장에 조인처럼 오신다. 이미 연기하기 전부터 조금 슬퍼보였다. 어려운 씬 찍을 때마다 먼저 보여주시고, 의견도 다 수렴해 주셨다. 최대한 불편하지 고 편하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셨다”고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노진표 역 장승조 스틸 [사진=넷플릭스]



 
여기에 이유미는 함께 호흡하며 충격 받았던 때도 덧붙였다. “함께 연기할 때는 상대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를 호흡하기 전에는 일일이 알 수없다. 희수를 때려놓고 ‘부부동반 모임 있어’라고 하는 씬에서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대신 손가락을 튕기는데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더라. 그걸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희수를 보면서 몰입감도 더해졌다. 또 희수가 비트 주스를 갈아서 줬을 때 아기자기한 피규어를 조립하고 있다. 소품의 설정도 놀라웠는데, 나중에 그 비트 주스에 담뱃불을 끄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반면 희수에게는 단짝 친구 은수가 있다. 은수는 어느 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희수를 찾아갔다가 그가 살고 있는 지옥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은수는 괴로워하는 희수를 위해 노진표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은수는 우연히 연을 맺게 된 진소백(이무생) 사장의 진강상회에서 노진표가 똑 닮은 조선족 불법체류자 장강(장승조)를 발견하고, 노진표를 죽이고 강장으로 둔갑시켰다. 끝난 줄 알았으나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장강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신혼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유미는 “장강이 살아 돌아와서 집 비밀번호를 누를 때, 지구 핵까지 갔다 온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정말 말이 안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순간 내 미래가 큰일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한테 도움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두려움을 사람으로 표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결로 나타난 느낌이었다. 처음 연기할 때는 무서웠다. 희수로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데도 실제 너무 무서웠다. ‘승조 선배님의 더 악한 모습이 더 있구나’하고 놀랐던 것 같다. 제2의 악을 끄집어 내주셨다. 감독님과 리허설 하면서도 ‘또 왔어…’라는 생각을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장강 역 장승조 스틸 [사진=넷플릭스]



 
‘노진표의 지옥’에서 벗어나자 다시 ‘장강’이라는 새로운 지옥문이 열린 희수 곁에는 단짝 은수가 항상 함께였다. 은수를 연기한 전소니와의 단짝 케미는 작품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소니 언니에 대해 너무 알고 싶어서 쉬지 않고 질문을 했다. 무슨 색깔을 좋아하냐까지 물었던 것 같다(미소). 언니는 만난 순간부터 선한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이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 언니가 해주는 칭찬은 조금 더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해서 더 좋았다. 언니랑 대화하면 너무 즐겁게 장난치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오래 만난 친구처럼 많이 의지했다.”

‘당신이 죽였다’는 미디어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무거운 주제로 마지막 결말에서는 비로소 해피엔딩을 안기며 힐링을 선사한다. 연출을 맡은 이정림 감독은 이유미에게 제안하면서 ‘나는 오늘도 꽃을 받았어요’라는 시를 자필 편지에 함께 적었다. 이유미는 ‘조희수’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이유미의 선택은 대중이 가진 ‘어두운 이미지’를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유미는 “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 시기에 그 캐릭터가 저를 찾아와준 줬고, 저는 열심히 표현하려고 했다. ‘힘쎈여자 강남순’도 ‘미스터 플랑크톤’도 밝았다. 저는 밝은 것도 했지만 어두운 이미지가 더 강렬해서 남은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의도한 바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 작품들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미지든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조희수 역 이유미 [사진=넷플릭스]



 
실제 이유미는 상상력이 풍부한, 무채색의 조희수와는 대조되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릴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배우를 꿈꿨고, 연기 비결마저 풍부한 상상력을 꼽는 ‘상상 부자’다. 인터뷰 내내 표현하는 법이 상상의 깊이감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정도다.

“저는 어릴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자기 전에 어떤 주제를 하나 정하고 상상하면서 잔다. 자기 전 시간이 제일 재밌는 시간이었다. 그게 배우가 되면서 구체화되고, 어릴 때부터 상상 훈련이 돼 있으니 뿌리를 뻗어 가면서 커진 느낌이다. 저로서는 운 좋게 어릴 때부터 좋은 훈련을 했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러면서 이유미는 “항상 제 모습 중에 부족한 모습만 보인다. 나중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었다. 그래서 항상 더 많이 상상하려고 하고,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촬영에 임하려고 한다. 실수를 줄이는 것이 ‘성장’이라는 단어와 맞닿은 것처럼, 제 상상력이 커질수록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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